1. 아리스토텔레스와 생태학
데모크리토스는 역학적이고 무기물적인 개념들과 법칙들을 토대로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양적 속성들만 가지고서 진공 속에서 역학적 운동을 하는 무목적적 물질적 입자의 세계를 설명하는데에는 적합했지만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어려웠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생물학적, 유기체적 범주들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암석과 공기와 같은 생명이 없는 물체도 '자연적 목적'에 따라 자연적 위치를 가진다고 보았다. 데모크리토스가 자연 소에서 발생되는 관찰을 통해 탐구 가능한 '사건'에 집중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의도와 목적을 가진 '행위'를 탐구했다. 그의 자연철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바 대로의 자연을 기술하는 것이다. 불과 공기에도 위 아래가 있다는 발상을 구상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경험에서 도출된 개념이다.따라서 그의 자연철학은 생태학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생태학적 균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철학이 인간과 자연 양자를 균등하게 고려하는 것은 결코 나쁜 접근법이 아니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퓌시스(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를 통해 사물이든 인간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적 기능을 다하는 것이 세계의 조화에 기여하며 올바른 상태라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계승하여 사물들이 자신의 자연적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을 '오염'이라고 보았다. 역학적 세계관이 위/아래, 냉/온, 건/습처럼 질적으로 상이한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반면(단지 수치로만 기록할뿐) 생태학적 관점은 이러한 질적인 차이를 구분한다. - 물과 불은 단순한 온도 차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작용 방식과 자연적 경향을 지님. 사막과 우림은 기온이나 습도뿐 아니라, 생태계의 구조, 시간의 흐름, 종의 관계망이 전혀 다름. 질적인 구분은 “서로 다른 체계”로 보는 인식이며, 단순히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의 차이를 말한다.
오늘날의 주요 생태학자들이 갈릴레이와 뉴턴과 같은 기계론적 원자론적 자연관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태학적 자연철학의 입장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생태계를 단순한 입자의 집합이 아닌, 서로 목적을 지닌 유기체의 상호작용 체계로 이해하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적 목적성(physis)이나 내재적 운동성 개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2. 지식과 실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각각 이론적 지식, 실천적 지식, 예술 혹은 기술적 지식으로 구분했다. 이론적 지식으로는 지각 가능하고 변화 가능한 사물들을 규명하는 자연철학, 불변적이고 양화 가능한 속성들을 규명하고자 하는 수학,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불변적 형상들을 규명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이 있다. 실천적 지식은 윤리적 능력을 통해 지혜로운 행위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는 참여하여 경험해봄으로써 알 수만 있다는 의미에서 "암묵적 지식"의 한 유형이라고 보았다. - 윤리학은 향후 보편적 윤리의 정당화(칸트의 정언명령)와 유용성의 극대화 문제(공리주의)로 이어진다.
또한 그는 논리학을 모든 학문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연장(도구)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대상으로 만들었고 논리적으로 올바른 연역들을 발견했다. 그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타당한 논증을 사용하여 동등하게 확실한 다른 명제들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중시하였고, 논리학은 이러한 이행을 확보해준다. - 물론 추론이 타당하더라도 전제가 거짓이라면 결론은 거짓이 될 수 있다. 이는 전제가 참인가와 추론이 타당한가의 물음이 구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연역은 증명 불가능한 원리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믿었다.(즉 공리체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뜻) 예를 들면 모순율의 경우 - A는 철수이다라는 명제와 A는 철수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동시에 참일 수 없다는 것 - 논증의 기본 원리이지만 이것 자체가 증명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3. 인간학과 사회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최상의 능력을 실현하기 위해 점진적인 사회화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보았다. 가족->마을->도시국가를 거치며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은 문명화가 이루어질 때야 비로소 나타난다고 보았다. 인간적인 생명 원리는 이성인데 이성의 만족할만한 성취는 좋은 도시국가를 전제로 한다. 반면 그는 육체노동은 그 자체로 좋은 삶이 아니며 어떠한 가치도 갖지 못한다고 보았다. 인간화의 과정은 육체노동이 아니라 주로 지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을 통해 일어난다고 믿었다. 또한 사적 영역을 없애려 했던 플라톤과 달리 가족 고유의 기능을 중시 했으며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서의 역할 분담과 균형을 중시했다.
좋음의 이데아가 사물들에 대해 독립적인 존재를 갖는다는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은 인간들이 사는 방식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정확히는 사회화를 통해 자신의 최상의 능력을 실현함으로써 덕을 실현할 것을 요한다. 또한 특정 능력 하나에 집중하기 보다는 육체적, 지성적, 개성적, 예술적인 모든 능력을 균형 잡힌 방식으로 육성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4. 정의로운 사회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현존 법에 기반을 둔 정의와 평등 원리에 기반을 둔 정의로 구분한다. 이 중 후자는 정의의 원리 안의 '자연권'요소를 함축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 가운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완결되는 실천적 활동을 ‘프락시스’라 부르고, 외부의 결과물을 목적으로 하는 제작 행위를 ‘포이에시스’로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정치학과 윤리학은 프락시스적 학문으로, 외적 결과물이 아닌 도덕적 탁월성과 공동체 안에서의 이성적 실천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 향후 산업화 시대에 인간존재를 포이에시스로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수많은 사상들이 등장한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지배자의 수와 법치 여부에 따라 6가지의 정치체제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 제한된 민주정(다수에 의한 법치)이 최선의 정치형태라고 보았다. 법에 의해 통치되며, 민주적 양의 원리(수)와 귀족적 질의 원리가 혼합된 정체이기 때문이다. 참주(1인 무법)의 통치하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직접실현할 수 없으므로 곧 노예가 되는 것과 같으므로 좋은 통치체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 참고로 플라톤은 다수에 의한 극단적 민주정이 감정에 의한 결정과 선동으로 인해 가장 불안정한 정치체제라고 보았다.
5. 예술
실용성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것, 이것이 당시의 예술에 대한 정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예술을 현실 혹은 개별사물의 모방으로 봤는데 플라톤과 달리 개별 사물들에게 더 높은 위상을 부여했기에 예술작품은 플라톤의 관점에서보다 그의 관점에서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그의 관점에서 예술의 기능은 카타르시스 즉 정화하기와 씻어내기에도 있다. 조화를 강조하는 그의 견해에서, 예술은 정신적 균형을 재창조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은 연극과 예술 작품들을 경험함으로써 조화와 평안을 찾고 정신을 고양할 수 있다. - 예를 들면 억압된 열정과 감정의 분출구를 예술 작품에서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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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 요약
- 아리스토텔레스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자연을 목적 지닌 유기체로 이해하며, 이는 생명 간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오늘날 생태학과 연결된다.
- 그는 지식을 이론적, 실천적, 기술적 지식으로 나누고, 특히 윤리학은 암묵적 지식으로서 경험을 통한 실천을 중시하였다.
- 논리학은 모든 학문의 도구로 간주되어 타당한 추론과 공리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인간은 가족→마을→국가로 사회화되며, 이성 실현은 좋은 도시국가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 그는 사적 영역을 중시하며 육체노동보다는 지적·정치적 활동을 인간화 과정의 중심으로 보았다.
- 좋음은 현실 속에서 덕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전인적 능력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 정의는 법치와 평등을 기준으로 나뉘며, 프락시스(도덕적 실천)는 정치학과 윤리학의 핵심이다.
- 제한된 민주정이 법치와 다수·소수의 조화를 이루는 최선의 정치체제로 제시된다.
- 예술은 단순한 모방이 아닌 정서적 정화(카타르시스)를 통해 인간의 정신적 균형을 돕는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생태학, 윤리학, 정치학, 예술에 걸쳐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심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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