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생활 경험은 종종 암묵적 지식을 수반하기 때문에, 직접 유사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에 비해 학문에서의 체계적 관찰은 일정한 개념 틀에 기반해 특정 주제를 대상으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타인이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선 것으로, 연구자는 모든 현상을 무작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연구 영역 내에서 의미 있는 특징들을 선별적으로 지각하고 기술한다. 특히 수학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관찰의 정확성과 객관성이 높아지며, 이는 천문학과 같은 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1. 코페르니 쿠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을 전개하여 교회의 승인을 받은 지구 중심설과 충돌했다. 그의 지동설은 혁명적인 주장으로 사람들의 생활 경험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독자들에게 스스로를 중심 밖에 있는 것으로 상상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우주를 관찰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 반성적 거리두기와 시각의 전복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불렸다 - 칸트는 인간의 인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이 혁명을 이용했다. 지동설은 인간 이성에 대해 과도하게 낙관적인 믿음과 우주 내에서의 인간의 독특한 위상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으로 여겨졌다. 이제 사람은 스스로가 우주 속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했다 - 후에 다윈의 진화론과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이 등장하면서 인간 이성에 대한 헛된 믿음은 더욱 축소된다.
체계적 관찰과 수학적 모델에 기초한 태양중심설은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온 생활경험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고 인간에게 자기 인식의 위기를 초래했다. 사람 눈이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증거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과학적 경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이론들이 인간의 생활 경험에 변화를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지동설은 인간에게 새로운 긍정적인 자의식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천구는 특별하고 인간의 거주하는 곳에 비해 질적으로 상위에 있다는 믿음의 기반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이 우주를 탐구하면서 성취한 진보로 새로운 긍정적 자기상을 구축하게 되며, 진보에 대한 믿음에 양분을 제공하게 된다.
2. 케플러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을 추구했다. 그는 신이 수학자였으며 수학적 형식들이 변하기 쉬운 감각의 세계를 지배한다고 확신했다. 그의 기계론적 해명은 새로운 자연과학의 기초를 놓는데 기여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수정하여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여 타원궤도로 돈다고 주장했다. 천체는 태양과의 거리에 따라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대표적인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벡터는 동일한 시간 간격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2) 어떤 두 행성의 회전주기의 제곱은 그것들과 태양 간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나중에 뉴턴의 중력이론이 왜 행성들이 상이한 속도의 타원궤도를 도는 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자 태양중심설을 옹호하는 논변이 더 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