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1)
비교적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며 오랫동안 역사를 만들어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일찍 자리잡았던 동북아시아권과 달리, 서유럽 세계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기존의 공동체 개념인 '같은 종교 소속인' '같은 영지 소속인' '같은 국왕의 통치를 받는 신민' 등의 개념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교황은 일찍이 권위를 상실했고, 찰스 1세와 루이 16세처럼 왕이 처형되던 시대에,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사조가 등장했고 이러한 기조의 등장이 가져왔던 집단 정체성의 공백을 '민족'이라는 개념이 차지한 것이다. 특정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은 피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여 서양 역사 변동의 중심점으로 작용해 왔고 이제는 종교나 제후, 영주, 왕이 아닌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피아를 구별하는 민족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또한서 역사적 정치적 지형에 따라 각국에 따라 민족주의는 국가별로 다른 양상을 보여주며 진화했다.
1. 민족과 민족주의
민족은 영토 및 언어, 혈연같은 실체를 구성요소로 근거로 형성된 종족적 집단으로 간주된다. 한편으로는 소속감과 소속의지에 따라 주관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로 설명된다. 즉 객관적 주관적 성격을 모두 지니며, 민족의 종족적이고 문화적 요소들이 상징화되고 정치화되면서 민족 정체성 형성에 크게 영향을 주며 형성되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다.
민족주의란 실체로서든 상상의 공동체로서든 민족을 기준으로 삼아서 특정 집단의 과거를 해석하는 틀이고, 그러한 민족 집단이 세운 현재의 질서를 옹호하거나 변혁 시키려는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규범이며, 미래 목표를 위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의 변화 단계를 살펴보면 우선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근대적 민족주의가 등장했으며, 둘째로 민족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민족국가 건설 운동을 펼치게 된다. 세번째 단계는 민족의 내부적 통합과 대외적 팽창을 위한 급진 민족주의 였다.(20세기초) 서유럽(영국, 프랑스)는 근대적 국민국가를 형성하려는 과정에서 신분적 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민족주의였으며, 중남부 유럽(독일, 이탈리아)의 경우 하나의 혈통과 언어, 문화를 가진 민족이 여러 나라로 분열된 상황에서 통일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종족적문화적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 동부 유럽에서는 강대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을 독립시키기 위한 분리 민족주의가 전개되었다. (헝가리,체코,리투아니아,그리스, 세르비아 등)
2. 초기의 민족주의
혁명시기에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의 정치적 사회적 공동체라는 민족개념이 등장했다. 또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위기 속에서 주변 국가들도 민족의식과 정체성을 자각했다. 제후나 국왕 종교를 통한 통합의 부재속에서 공동체를 통합할 새로운 수단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초기 민족주의는 부흥민족주의로 규정되는데, 민족의 위대했던 과거를 소환하며 암울한 현실과 대비하면서 위대한 민족의 부흥을 꿈꿨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이러한 바탕에 언어적 동질성을 보유하고 있던 이탈리아, 독일 민족은 민족국가의 건설과 부흥을 추구했다.
초기 민족주의는 소수 지식인 엘리트층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들이 민족의 문화 퐁속 역사와 신화를 연구하고 인쇄매체를 활용하여 모국어의 표준화 등을 이루면서 민족의 공통된 사고를 만들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파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사회집단을 민족으로 결집할 수 있었다. 또한 민족주의는 부르주아 시민계급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는데 서유럽과 중남부 유럽의 경우 시민계급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하면서 이 자유를 민족적 단위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민족이라는 단위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찾고 공통체 의식을 형성함으로써 전통적 신분사회를 해체하고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시민들로 구성된 국가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동유럽의 경우 귀족이 민족주의를 주도했는데 제국의 지배에서 민족을 해방시키려는 민족주의 운동을 추구하면서도 신분적 질서는 공고히 유지하려 했다. 이는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민족의 개념을 이용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러한 신분적 배타주의는 동유럽 국가들의 민족적 통합에 장애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교황을 중심으로 한 보편주의를 추구한 카톨릭은 민족주의에 적대적이고 개신교가 우호적이었으나, 각 국가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이 달라지곤 했다. 스페인이나 아일랜드의 경우 민족적 전통이 카톨릭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가톨릭 성직자 들이 민족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대체로 지역의 집단 공동체에 충성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19세기 말에들어서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다.
역사학의 등장은 민족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현재가 과거를 문화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그렇게 구성된 기억이 다시 현재를 구성하게 했다. 즉 민족주의는 역사적 기억을 반복적으로 재인식하면서 보존했으며 이 기억이 현재의 민족적 정체성과 민족국가의 정당성을 보증했다는 것이다. 특히 역사학은 민족의 기원 신화를 탐구했고, 이 기원신화가 민족의 본질적 특성을 규정함으로써 소속감의 근거와 정체성이 되었다. 독일의 경우 로마 시대 케루스키족 지도자였던 아르미니우스(로마군을 격파한 장군)를 반 로마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독일민족의 원형으로 신격화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아이네이아스, 프랑스인의 경우 트로이의 왕족 프랑퀴스를 시조로 신격화 하며 트로이와의 역사적 연속성을 통해 민족적 우월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리고 공간의 신화를 통해 상상속의 영토적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민족의식이 강화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는 라인강이라는 인식을 통해 두 국가의 개별적 공간의식이 확보되었으며, 폴란드의 경우 자국의 영토를 이슬람에 대항하는 방어벽으로써 공간적개념으로 창출해냈다. 또한 과거의 역사 속 특정 전쟁들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의식을 확보하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에 맞선 이탈리아의 전쟁, 오스만 투르크로부터의 그리스의 독립전쟁 등은 민족적 기억에 확고하게 자리 잡으며 민족통합의 토대가 되었다. 독일의 경우 러사아에서 패퇴하는 나폴레옹에게 승리를 거둔 프로이센의 성과를 자유전쟁이나 해방전쟁으로 해석하고 기념했다.
1. 민족 개념의 기원과 유럽 내 전개
- 동아시아는 같은 언어, 문화, 역사 공유로 민족 개념이 일찍 정착.
- 서유럽은 중세까지 종교, 봉건 영주, 국왕 중심의 공동체 개념이 우세.
- 프랑스 혁명(1789) 이후 교황·왕권이 약화되며 ‘국민(nation)’ 개념이 정치적 정당성의 새로운 근거로 부상.
- 루이 16세 처형(1793), 찰스 1세 처형(1649) 등의 사건은 권위 기반의 붕괴를 상징.
- 자유주의와 인권 담론이 확산되며 ‘민족’이 새로운 집단 정체성으로 자리잡음.
2. 민족과 민족주의의 정의
- 민족: 언어, 혈연, 영토 등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주관적 소속 의식과 상징이 정치화되면서 정체성 강화.
- 민족주의: 민족을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하고, 현재 질서를 정당화하며, 미래 이상을 기획하는 사상·운동.
3. 민족주의의 역사적 발전 단계
- 근대 민족주의의 등장: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평등·시민이라는 정치 공동체 개념이 민족 개념으로 이어짐.
- 자유주의 결합기: 민족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해 국민국가 건설 운동 전개 (이탈리아, 독일).
- 급진 민족주의: 20세기 초 내부 통합과 대외 팽창을 추구하며 극단화됨.
4. 지역별 민족주의의 양상
- 서유럽(프랑스, 영국): 신분 질서 해체 및 자유 시민 국가 수립을 위한 통합 민족주의.
- 중남부 유럽(독일, 이탈리아): 언어·문화적 동질성 기반의 통일 민족국가 건설 운동.
- 동유럽(헝가리, 체코, 그리스 등):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분리 민족주의.
5. 초기 민족주의의 특징
-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충격으로 민족 개념 등장.
- 고대의 영광을 부흥시키려는 부흥 민족주의(Revivial Nationalism) 성격 (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재현).
- 지식인·엘리트 주도, 표준어 정립, 신화·역사 연구를 통해 공통 정체성 확립.
6. 계층별 민족주의의 주체
- 서유럽: 시민계급(부르주아)이 정치·경제적 자유를 민족 단위로 추구.
- 동유럽: 귀족이 제국 해방의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되 신분 질서는 유지.
7. 종교와 민족주의
- 일반적으로 개신교는 민족주의에 우호적, 가톨릭은 적대적이나 예외 있음.
- 스페인, 아일랜드: 가톨릭 성직자들이 민족운동 주도.
8. 농민과 민족정체성
- 19세기 말 이전에는 지역 공동체 중심 충성.
- 이후 민족 정체성 확대되며 국민의식 형성됨.
9. 역사학과 민족주의
- 역사학은 민족주의의 도구로 기능하며 과거를 문화적으로 구성해 현재 정체성을 정당화.
- 예: 독일의 아르미니우스(케루스키족 장군), 이탈리아의 아이네이아스, 프랑스의 프랑쿠스 등 민족의 ‘기원 신화’ 강화.
10. 공간의 신화와 민족의식
- 특정 공간을 민족의 상징으로 인식함.
- 프랑스 vs 독일: 라인강
- 폴란드: 이슬람에 맞선 방어선으로서의 민족 영토
-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맞선 전쟁
- 그리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
- 독일: 프로이센의 나폴레옹 격퇴 → ‘자유전쟁’으로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