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학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며 법학적 성찰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 핵심 문제는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구속력 있는 법의 토대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법은 단지 권력과 전통의 표현에 불과한가?' 였다. - 이 논쟁은 중세와 근대로까지 이어진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유용성 계산은 법적 결정의 효과를 논하는데, 이는 차후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적 전통으로 이어진다.
로마마법이 잘 발달된 이유는 이론적 유산 때문만이 아니라 실재적 필요 때문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많은 종족 집단과 문화 집단을 가진 제국에 맞는 공통된 법체계를 만들어내야 했다. 따라서 추상 수준을 높여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되는 일반 규정을 정식화했다. 또한 보편적인 규범의 해석을 통해 개별 사례에 적용할 수 있게끔 전문가 집단을 교육시켜야 했다.
2. 수학
플라톤의 이데아와 그 존재에 대한 성찰은 수학의 기본 문제에 대한 성찰로 봐도 무방하다. 즉 객관적 지식과 타당한 연역 그리고 증명의 문제는 수학의 기본 문제인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의 형석적이고 연산적인 측면을 증진시켰다. 유클리드는 자명한 공리로부터 타당한 연역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기하'를 집필했는데 이는 뉴턴 및 데카르트가 방법론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3. 물리학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고대의 사람들에게 너무 사변적으로 보였다.(볼 수가 없었기 때문) 따라서 지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이 널리 수용되 었다. 그의 생태론적 시각(종과 환경과의 상호작용)또한 대세적인 관점이었다.
4. 천문학
르톨레마이오스는 지구 중심적 세계관을 전개했고 이는 오랜기간 지배적 우주 모델로 기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든 사물의 자연적 운동은 지구를 기준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가르쳤다. 이 시기에도 태양 중심적 세계관이 이미 제시 되기도 했으나 우리 주위를 도는 별과 행성, 그리고 부동의 지구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 경험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였기에 수용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교회가 지구 중심적 세계관이 성서와 일치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구 중심적 세계관이 무너지기 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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