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부터 유럽의 시장은 그 영역이 점차 넓어졌고 식민지에서 유입된 은의 증가로 활발한 화폐주조를 통해 높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물가 상승은 고용주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주어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 자본주의 탄생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무역의 발달은 상업도시와 금융도시의 발전을 가져왔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금융업의 중심지로 떠올라 한 때 유럽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도시로 떠오르기도 했다.
반면 북동부 유럽에서는 여전히 농노제가 지속되었는데 이는 상업자본으로부터 자본 획득이 불가능했던 이 지역 지주들이 정부를 장악하여 부역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와 곡물 수출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 등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유럽에서는 지주들이 농장 경영에 필요한 자본을 상업자본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중세의 봉건적 인신구속적 세금 부과가 아닌 자본주의적 임차 관계와 임금 노동관계가 정착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 네덜란드, 북부 독일 등 신교를 채택한 국가들은 카톨릭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매각하여 많은 토지가 시장에 나왓는데 이러한 토지의 세속화를 통해 도시 자본이 농촌으로 주입되고 자본주의적 토지 보유관계가 확산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교역 범위의 확대가 가져온 또하나의 변화는 인클로져 운동이었다. 동유럽에서 싼 가격에 곡물을 수입할 수 있게 되면서 잉글랜드에서는 경작지가 목초지로 전환되는 경향이 강화되었고, 소규모 토지를 보유했던 농민들은 땅을 팔고 부랑자가 되는 길 밖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생활리듬을 바꾸어놓는 자본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프랑스에서는 작위를 보유한 자들이 귀족 신분을 구성하고 각종 특권과 영예를 누렸다. 잉글랜드의 경우 상원의원은 작위귀족만 될 수 있었으며, 하원의원도 대지주인 젠트리 중에 선출되었다. 프랑스는 군주가 정치적이고 법적인 강제력을 독점하는 대신 귀족의 사회경제적 특권을 강화시켜주었다. 상업활동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는 관직과 영지의 매입을 통해 귀족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1620~24년 사이 프랑스 국왕의 수입중 38퍼센트가 관직매매에서 나왓을 정도였다.
--------------------------
✅ 1. 16세기 유입된 신대륙의 은과 인플레이션
📌 역사적 배경
- 포토시 은광(현재 볼리비아): 스페인이 1545년에 채굴 시작 → 16세기 후반부터 유럽 전체로 은 대량 유입
- 유입된 은은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영국·네덜란드, 나아가 **중국(마카오-마닐라 무역)**까지 퍼짐
- 유럽 각국은 이를 활용해 화폐 주조를 확대하고, 조세 수입도 화폐로 전환
📌 결과: 가격혁명(Price Revolution)
- 약 1500
1650년 사이 유럽 물가는 **46배 상승** - 특히 식료품, 생필품, 주거비 상승 → 임금은 더디게 상승 → 실질임금 하락
- 지대 수입 고정인 귀족보다, 상품 판매 수익이 증가한 자본가, 지주가 이익
📈 자본가 계층은 이 시기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이룩하며 자본주의의 기반을 형성
✅ 2. 자본주의 발전과 농촌 구조의 양극화
📌 서유럽: 임금노동 관계의 정착
- 상업자본이 발달한 서유럽에서는 지주가 농장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차입 가능
- 따라서 농민은 자유롭게 토지를 빌리고, 임금을 받고 일하는 관계로 재편
- 중세의 인신 구속적 농노제는 점차 소멸
📌 동유럽: 농노제의 강화 (제2농노제)
- 폴란드, 러시아, 프로이센 등 동유럽 지역: 상업자본의 유입이 미비하고, 도시 발달도 더딤
- 이 지역 귀족은 국가기구를 장악하여 농민의 부역 노동을 강제
- 곡물 수출을 독점하고, 지대 수입을 늘리기 위해 오히려 농노제 강화를 시도
🧱 서유럽은 자유노동과 자본 중심, 동유럽은 군사적 지배층에 의한 봉건적 지배체제 강화라는 구조적 대조가 발생
✅ 3. 종교개혁과 자본주의적 토지구조 변화
📌 종교개혁과 교회 재산의 세속화
- 루터파, 칼뱅파가 확산된 지역(영국, 네덜란드, 독일 북부 등)에서는
교회 재산의 몰수와 국유화, 또는 민간 매각이 대규모로 일어남 - 예: **헨리 8세(1530년대)**의 수도원 해산 → 잉글랜드 국왕이 교회의 광대한 토지를 몰수하고 민간에 매각
- 부르주아나 지주들이 이를 매입하며 자본주의적 토지소유 구조 형성
✅ 4. 잉글랜드의 인클로저 운동과 농민의 해체
📌 원인: 곡물 가격 하락 + 양모산업의 확장
- 16세기 말부터 동유럽산 곡물 수입 증가 → 국내 경작지의 수익성 하락
- 대신, **양모 수출(스페인·플랑드르 수요)**이 유리하다는 판단 → 목초지화(인클로저) 진행
📌 결과: 농촌 구조의 재편
- 공동지와 공유농지를 강제적으로 울타리치고, 소규모 자작농들을 퇴출
- 농지를 상실한 농민층 → 도시 유입 + 부랑자화 → 초기 산업노동력 공급
- 1601년: 영국 구빈법(Poor Law) 제정 → 부랑자 문제의 국가적 관리 시도
⚠️ 인클로저는 “생산성 증가”와 “노동유연화”를 이룬 반면, 사회적 불평등과 토지 집중을 심화
✅ 5. 귀족, 부르주아, 그리고 ‘신흥계층’의 형성
📌 프랑스: 작위+관직을 사고파는 신분상승 시장
- 프랑스 국왕은 재정 확보를 위해 ‘관직 매매제도(La vénalité des offices)’를 제도화
- 부르주아는 부를 통해 관직이나 영지를 매입 → **“검귀족(noblesse de robe)”**이 됨
- 대표적 사례:
- 1620~24년 국왕 수입의 38%가 관직 매각에서 나옴
📌 잉글랜드: 젠트리 중심의 신사계급 형성
- 젠트리(Gentry)는 상업과 농업에서 축적한 자본으로 지방의 토지를 매입
- 이들은 하원 의원, 사법관 등으로 성장하며 정치적 영향력까지 장악
- 이들 중 상당수는 청교도 혁명, 명예혁명의 지지층이 됨
🏛 프랑스는 관료적 봉건 귀족 구조의 강화,
잉글랜드는 지주·상공 자본가의 하원 기반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계층이 재편
✅ 전체 요약: 자본주의의 발아, 지역마다 다른 경로로 전개되다
🪙 은 유입 | 화폐경제 확산, 인플레이션 → 상업이윤↑ | 영향 상대적으로 적음 |
💼 토지 관계 | 교회 토지 몰수 → 자본가의 토지 소유 | 귀족의 대토지 집중, 농노제 강화 |
🚜 농촌 구조 | 인클로저 → 자유노동화, 도시노동력 증가 | 부역제 유지, 농민 이탈 억제 |
⚖️ 귀족-부르주아 관계 | 젠트리로 흡수되거나 하원에서 영향력 | 작위 매매로 귀족 진입 (프랑스식 기생귀족화) |
'서양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업혁명 (1) | 2024.09.14 |
---|---|
시민혁명 (1) | 2024.09.13 |
유럽 각국의 발전 (0) | 2024.09.11 |
근대 재정 군사국가의 등장 (0) | 2024.09.10 |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0) | 2024.09.10 |